부제
유니버설 스튜디오 가는 전철에서 가방을 두고 내린 날
해외 여행 중 가장 무서운 일이 무엇일까.
소매치기?
길 잃어버리기?
비행기 놓치기?
나에게는 그보다 더 큰 일이 있었다.
가족 4명의 여권이 들어 있는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오사카 여행 둘째 날 아침.
유니버설 스튜디오로 가는 전철 안에서.

(당시 오사카 유실물센터에서 받은, 기적적으로 가방이 와카야마시 전철역에 보관되어 있다는 확인증)
당시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아침부터 일정이 꼬였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일찍 들어가야 했는데 예상보다 늦게 출발했다.
전철 안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문제는 둘째였다.
당시 둘째는 호기심이 정말 많았다.
잠시만 한눈을 팔면 다른 칸으로 가고,
다른 사람을 구경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바로 달려갔다.
나는 물과 간식, 각종 여행용품이 들어 있는 백팩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가족 4명의 여권이 모두 들어 있었다.
가방이 무거워서 전철 선반 위에 올려두었다.
그 선택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었다.
내릴 역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갑자기 둘째가 옆 칸으로 뛰어갔다.
순간 정신이 없어졌다.
“둘째야 내려야 돼~~”
아이를 붙잡고, 전철문이 닫히기 전에 내려야 했다.
결국 아이부터 잡고 급하게 내렸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그때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가방은?????”
“여보, 가방 챙겼어?”
“아니???”
가방 전철 선반에 놓고 내렸네
가방에 뭐 있는데? 핸드폰 지갑 어디있어?
핸드폰 지갑은 여기 있는데 가방에 여권이 4개 다 들어있어..
“……”
정말 과장 없이 1시간 같은 1분이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후회되는 것이 있다.
내가 내린 칸 번호.
기차 시간.
행선지.
이런 것을 바로 적어뒀어야 했다.
하지만 사람은 당황하면 생각보다 아무것도 못한다.
어느 역인지도 헷갈리고,
어느 방향 열차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역 안내소로 달려갔다.
파파고를 켜고 말했다.
“여권이 들어 있는 가방을 잃어버렸습니다.”
직원은 친절했다.
하지만 질문은 어려웠다.
몇 시 열차였는가?
어느 칸이었는가?
어느 방향 열차였는가?
솔직히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결국 유실물센터에 문의해보라는 안내를 받았다.
여권을 찾아야 하는데 당장 찾을 방법은 없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입장 예약은 해놨고….
그 와중에도 다행인 점이 하나 있었다.
핸드폰과 지갑은 가지고 있었다.
만약 그것까지 없었다면 정말 여행이 끝났을지도 모른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는 아이들과 아내가 나름 즐겁게 놀았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 여권 찾는 방법을 검색했다.
한국 영사관.
긴급여권.
항공권 변경.
숙소 연장.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금도 그날 유니버설에서 무엇을 봤는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실 이 여행은 여권 분실만 기억에 남는 여행은 아니었다. 발달장애 아이와 함께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방문하며 예상치 못한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 발달장애 아이와 오사카 자유여행, 그리고 유니버설 스튜디오 장애인 패스 이용 후기
저녁에는 숙소 근처 경찰서를 찾아갔다.

(당시 경찰서에 분실신고를 하고 받은 접수증)
당신의 「분실신고서」를 접수한 사람은
- 접수일: 레이와 6년(2024년) 12월 1일
- 니시나리 경찰서(西成警察署) 총무과
- 담당자: 이시하라(石原)
접수번호: 5541호
향후 절차에서 접수번호가 필요할 수 있으므로 이 카드를 보관해 두십시오.
만약 본인이 분실물을 발견한 경우에는
토요일·일요일·공휴일을 제외한
오전 9시 ~ 오후 5시 45분 사이에
니시나리 경찰서 회계과 분실물 담당에게 연락해 주십시오.
☎ 06-6648-1234
(내선 235)
파파고로 설명하고 분실 신고를 했다.
경찰은 찾으면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그날 밤은 사실 여행이 아니었다.
가족회의였다.
다음날 또는 다다음날 귀국 예정이었다.
그런데 여권이 없었다.
결국 최악의 상황까지 계산했다.
숙소 연장.
항공권 재발권.
영사관 방문.
긴급여권 발급.
다행히 숙소는 저렴하게 하루 연장할 수 있었다.

항공권은 새로 발권해야 했지만 항공사에서 사정을 듣고 비교적 낮은 금액으로 변경을 도와주었다.
다음날 아침.
유실물센터로 갔다.
그리고 드디어 희망적인 말을 들었다.
“가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가방은 오사카에 없었다.

직원이 설명했다.
내 가방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와카야마시역에 있다는 것이다.
와카야마?
처음 들어보는 지역이었다.

결국 전철을 갈아타고 또 갈아타고.
시골 풍경이 보이는 곳까지 이동했다.
왕복으로 약 5시간.
오사카 여행 중 가장 긴 이동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방을 찾았다.
직원이 물었다.
가방 색깔은?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나?
설명하는 데도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냥 감사했다.
가방을 열었다.
여권 4개가 그대로 있었다.
현금도 그대로 있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그때 깨달았다.
이건 일본이라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물론 어느 나라든 선한 사람은 있다.
하지만 만약 다른 환경이었다면 가방을 다시 찾지 못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내가 와카야마를 다녀오는 동안 가족들은 어디 멀리 가지도 못했다.
숙소 근처를 산책하고,
밥을 먹고,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여행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평생 잊지 못할 하루가 되었다.
이 사건 이후 바뀐 점
지금은 절대 여권을 백팩에 넣지 않는다.
여권은 반드시 몸에 지니는 작은 크로스백에 넣는다.
그리고 절대로 몸에서 떼어놓지 않는다.
또 여행 중에는 항상 생각한다.
“만약 지금 이 물건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 여행 중 여권을 잃어버렸다면
- 즉시 역무원 또는 직원, 기타 등등에게 알리고 문의
- 현재 위치 분실즉시 위치 확인 (ex. 열차 시간과 탑승 구간 기록하기)
- 유실물센터 문의하기
- 경찰에 분실신고 접수하기
- 영사관 연락처 확인하기
- 항공권과 숙소 변경 가능성 검토하기
- 항시 이동간에 사진 많이 찍기 (동선 등 확인)
- GPT 사용하기 (그 당시 GPT를 유용하게 썼음에도 분실 당시에는 너무 당황하여 사용안함)
여행에서 가장 비싼 물건은 여권이 아니다.
여권을 잃어버린 뒤 사라지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다.
오사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아니다.
뜻밖에도 와카야마시역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여행 이야기를 만들었다.
오늘도 한 걸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