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아이와 괌 여행, 우리 아이가 처음 바다에 들어간 날

괌 여행 사진을 정리하다가 한참을 멈춰 있었다.

사진 속에는 원주민 공연을 보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고, 빨간 트롤리버스에 올라타는 뒷모습도 있었고, 오픈카 뒷좌석에서 바람을 맞으며 웃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괌 여행에서 내가 가장 오래 바라본 사진은 따로 있었다.

첫째가 바다에 들어가 있는 사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흔한 바다 사진일 수 있다.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얕은 바다에서 노는 사진.
해외여행 가면 누구나 한 장쯤 찍는 그런 사진.

그런데 우리 가족에게는 조금 달랐다.

우리 첫째는 예전부터 바다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바다를 멀리서 보는 것은 괜찮아도 직접 들어가는 것은 어려워했다.

물이 너무 많고, 끝이 보이지 않고, 발에 닿는 모래의 촉감도 싫어했다.
파도가 밀려오고, 바닥이 고르지 않고, 발밑에서 모래가 움직이는 느낌도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바다는 그냥 보는 걸로 끝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괌 바다는 예뻤지만, 내 마음은 조심스러웠다

괌 바다는 정말 예뻤다.

사진으로 봐도 물빛이 다르다.
투명한 에메랄드빛 물, 멀리 보이는 바다, 얕은 수심, 하늘에 떠 있는 구름까지.

어른 입장에서는 “여기까지 왔는데 바다는 들어가야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하지만 발달장애 아이와 여행을 하다 보면 그런 당연한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내가 좋다고 아이도 좋은 것은 아니고,
내가 괜찮다고 아이도 괜찮은 것은 아니다.

특히 감각에 예민한 아이에게 바다는 생각보다 큰 자극이다.
발에 닿는 모래, 물의 차가움, 파도 소리, 햇빛, 사람들 소리, 몸에 붙는 래시가드와 구명조끼까지.

하나하나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아이에게는 전부 부담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도 억지로 끌고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아이가 바다를 바라보고, 주변을 걷고, 마음이 내키면 발만 담가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관련 글 > “무발화 발달장애 아이를 10년 키우며 알게 된 것“)


그런데 첫째가 바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첫째가 바다에 들어갔다.

물론 처음부터 신나서 뛰어든 것은 아니었다.
그런 드라마 같은 장면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명조끼를 입고, 동생과 함께 얕은 바다에 서 있었다.
몸을 완전히 맡긴 것은 아니더라도, 분명히 바다 안에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이 참 신기했다.

예전 같으면 발끝에 모래가 닿는 것만으로도 싫어했을 텐데,
이번에는 물 안에서 버티고 있었다.

사진을 보면 첫째가 몸을 돌리고 있고, 둘째는 웃고 있다.
누가 보면 그냥 형제가 바다에서 노는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진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게 되는 날도 오는구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큰 변화였다.

아이가 갑자기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앞으로도 바다를 매번 좋아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이번 괌 여행에서는 첫째가 바다에 들어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이번 여행이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사진으로 보니 아이는 생각보다 많이 보고 있었다

여행 중에는 아이가 무관심해 보일 때가 많다.

불러도 대답이 없고,
표정이 크게 변하지 않고,
좋은지 싫은지 바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 순간에는 가끔 헷갈린다.

“얘가 지금 재미있는 건가?”
“힘든 건가?”
“그냥 따라다니는 건가?”

이번 괌 여행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원주민 공연을 볼 때도 그랬다.
앞에서는 춤을 추고, 뒤에서는 음악이 나오고, 불쇼도 이어졌다.
공연자는 아이들 바로 앞까지 와서 동작을 알려주고, 아이들도 따라 해볼 수 있었다.

둘째는 비교적 바로 반응이 보였다.
몸을 움직이고, 표정도 나오고, 신나는 게 보였다.

첫째는 조금 달랐다.
무관심한 듯 서 있기도 했고, 그냥 멀뚱히 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사진을 다시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는 보고 있었다.
공연자의 동작을 따라 하려고 손을 올리고 있었고, 시선도 무대 쪽을 향해 있었다.
표현이 크지 않았을 뿐, 그 순간을 자기 방식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사진을 보며 또 한 번 느꼈다.

아이가 반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구나.


원주민 공연, 불쇼, 그리고 아이들의 어설픈 춤

괌에서 본 원주민 공연은 우리 가족에게 꽤 인상적이었다.

무대 위에서는 음악이 계속 나오고, 공연자들은 힘 있는 동작으로 춤을 췄다.

몇몇 아이들을 무대로 초대하는 시간도 있었다.

둘째가 과감히 나가서 춤도 추었다.

어릴 때는 이런 자리에 아이를 세우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낯선 장소, 큰 소리, 많은 사람, 갑작스러운 참여 요청.

그런 요소들은 발달장애 아이에게는 전부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둘째가 나가서 이렇게 춤도 추고 하는 것을 보니
뭔가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

불쇼도 봤고, 음악도 들었고, 아이들은 어설프게나마 공연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괌까지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빨간 트롤리버스와 오픈카, 아이들에게는 이동도 여행이었다

괌 여행에서는 이동하는 순간들도 기억에 남았다.

사진 속에는 아이들이 빨간 트롤리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이 있다.
작은 아이가 버스 앞에서 기다리고 있고, 첫째는 먼저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아이들에게 버스나 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닐 때가 많다.
특히 평소와 다른 모양의 버스, 다른 색깔의 차, 열린 창문, 낯선 도로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체험이 된다.

이번에는 오픈카도 타봤다.

사실 아이들에게 오픈카가 어떤 의미였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진 속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안전벨트를 하고 앉아 있었고, 표정은 밝았다.

바람을 맞고, 하늘을 보고, 괌의 도로를 달리는 경험.

어른인 나에게도 색다른 경험이었는데, 아이들에게는 더 낯설고 신기했을 것이다.

첫째가 그 순간을 얼마나 기억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하지 않을까.
눈으로 본 풍경, 피부에 닿은 바람, 차 안에서 웃던 동생의 소리 같은 것들이 아이 안에 조금은 남지 않을까.


괌의 바다와 공원, 그리고 우리 가족의 속도

괌은 바다만 있는 곳은 아니었다.

넓은 잔디가 있는 공원도 갔고, 야자수가 늘어선 길도 걸었다.
큰 동상 앞에서 사진도 찍었고,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다리 위도 걸었다.

사진 속 아이들은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멈추기도 했다.
아내는 바다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고,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엄마 쪽으로 뛰어갔다.

이런 장면들은 여행 중에는 그냥 지나간다.

아이 챙기고, 짐 챙기고, 다음 장소 생각하고, 밥 먹일 곳 찾고, 화장실 위치 확인하고.
여행 중에는 여유롭게 감상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런데 사진으로 다시 보면 그 순간들이 다르게 보인다.

아, 저때 아이가 뛰고 있었구나.
아, 저때 첫째가 생각보다 잘 따라왔구나.
아, 저때 둘째가 엄청 신났구나.

발달장애 아이와 여행을 하면 빠르게 많이 보는 여행은 어렵다.
대신 우리 가족만의 속도가 생긴다.

조금 느리고, 조금 더 멈추고, 계획이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남는 장면들이 있다.


발달장애 아이와 해외여행, 결국 기준은 남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었다

발달장애 아이와 해외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괜찮을까?”

비행기는 괜찮을까.
음식은 먹을까.
잠은 잘 잘까.
사람 많은 곳에서 힘들어하지 않을까.
갑자기 컨디션이 무너지면 어떻게 하지.

이런 걱정은 실제로 필요하다.
무작정 “가면 다 된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 걱정만 하다 보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우리도 그랬다.
처음부터 모든 여행이 편했던 것은 아니다.
여행을 갈 때마다 변수가 있었고, 아이의 반응을 보며 계획을 바꿔야 할 때도 있었다.

이번 괌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번에는 하나가 달랐다.

첫째가 바다에 들어갔다.
원주민 공연을 눈앞에서 봤다.
오픈카를 탔다.
처음 보는 풍경 속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걸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특별할 것 없는 여행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 괌 여행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번 여행은 관광지를 몇 군데 다녀왔느냐보다,
우리 아이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세상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본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괌 여행을 다녀와서 느낀 현실적인 정리

발달장애 아이와 괌 여행을 고민한다면, 나는 무조건 좋다고만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마다 성향이 다르고, 감각 예민함도 다르고, 낯선 환경을 받아들이는 정도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 기준으로 괌은 생각보다 아이와 함께하기 괜찮은 여행지였다.

바다가 얕은 곳이 많아 아이가 천천히 적응하기 좋았고,
트롤리버스나 오픈카처럼 이동 자체가 체험이 되는 순간도 있었다.
공연이나 해변, 공원처럼 너무 복잡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장면도 많았다.

물론 억지로 하면 안 된다.
바다도, 공연도, 이동도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해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이것이다.

아이는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 보고 있고,
크게 웃지 않아도 느끼고 있고,
당장 반응하지 않아도 자기 안에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신 작은 변화는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이번 괌 여행에서 우리 첫째는 처음으로 바다에 들어갔다.

그 한 장면이면, 이번 여행은 충분했다.


오늘도 한걸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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