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아이와 해외여행이 가능할까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마다 대답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발달장애 아이들은 정말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는 비행기를 무척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비행기 타는 것을 여행의 하이라이트처럼 생각했다.
사람이 많은 곳도 크게 힘들어하지 않는다.
놀이공원도 좋아하고, 시끄러운 환경도 비교적 잘 적응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 아이를 보고
“발달장애가 맞냐”
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는 갑자기 호기심이 생기면 앞뒤를 보지 않고 달려간다.
어릴 때는 분수대만 보이면 그대로 뛰어들어갔다.
쇼핑몰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의 쇼핑백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저 안에 뭐가 들었을까?”
그 호기심이 행동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친구를 물기도 했고, 약의 부작용으로 자기 살을 뜯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소음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바로 아이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잠깐만 방심해도 아이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고 순식간에 이동해 버린다.
이번 오사카 여행도 그런 긴장감 속에서 시작되었다.
우리 아이는 현재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아직도 언어발달이 많이 지연되어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우리 아이는 아직도 엄마, 아빠를 말하지 못한다」 글에 정리해 두었다.

오사카에 도착한 첫날.
관광지보다 오히려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런 평범한 골목길이었다.
한국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풍경.
좁은 골목 사이로 전선이 빼곡하게 지나가고 작은 가게들이 이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봤고,
나는 또 직업병이 도져 전신주와 통신선부터 보고 있었다.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여행 와서도 저런 것만 보냐?”
그런데 정말 어쩔 수 없다.
20년 가까이 통신 일을 하다 보니 어느 나라를 가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전신주와 통신시설이다.

실제로 길을 걷다가 일본 통신 작업 현장도 발견했다.
고소작업차를 이용해 작업 중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췄다.
한국과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었다.
가족들은 먼저 걸어가고 나는 뒤에서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
아마 평생 못 고칠 직업병일 것이다.

여행 내내 가장 고생한 사람은 아마 아이 엄마였을 것이다.
두 아이 손을 꼭 붙잡고 걷는 모습이 지금도 사진으로 남아 있다.
특히 우리 아이는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
관심이 생기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간다.
그래서 여행 중에는 항상 누군가 한 명은 아이 곁에 붙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사진 속 아내 표정은 밝다.
힘들지만 즐거웠던 여행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메다 스카이빌딩은 아이들이 생각보다 좋아했다.
특히 공중으로 연결된 긴 에스컬레이터.
우리 아이는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봤다.
높은 곳이라 무서워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놀란 듯한 표정으로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 표정만 보면 알 수 있다.
아이가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전망대에서는 형제의 멋진포즈도 사진도 남겼다.
사실 부모는 여행지보다 아이를 더 많이 본다.
멋진 풍경보다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사진도 그렇다.
지금 다시 봐도 전망대보다 아이들 표정이 먼저 보인다.
갑자기 생각난 우리 아이의 변화
신기한 변화도 있었다.
어릴 때 우리 아이는 동물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강아지가 옆에 있어도 쳐다보지 않았다.
정말 병풍 취급이었다.
그런데 2년 전쯤부터 갑자기 달라졌다.
이제는 강아지나 고양이만 봐도 깜짝 놀란다.
멀리서 봐도 피하려고 한다.
왜 그런 변화가 생겼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런 일이 종종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고,
무관심하던 것에 예민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도 늘 새롭게 적응해야 한다.
지난 글에서 썼듯이 우리 가족은 10년 가까이 언어치료와 감각통합치료를 이어오고 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예상 못한 행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이었다.
사실 출발 전에는 영문 장애인증명서만 준비했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현장에서 문득 생각이 났다.
롯데월드도, 에버랜드도 장애인은 가족까지 패스권을 주는데 혹시 여기도 줄까?

“혹시 장애인 패스 같은 게 있나요?”
직원의 안내를 받아
영문 증명서를 바로 파파고로 일본어로 번역하여 보여주었다.

파파고로 실물 장애인복지카드를 번역하여 이미지와 실물을 보여주니
장애인패스권을 받을 수 있었다.
이후로는 정말 국내 놀이공원에서 패스권을 사용하는 것처럼 사용했다.
각 어트랙션 입구 직원에게 패스권을 보여주면
이용 가능 시간을 등록해 준다.
이후 해당 시간에 다시 오면 긴 줄을 서지 않고 입장할 수 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장애인 본인을 포함해 동반 3명까지 함께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가족은 4명이라 모두 이용 가능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제도 덕분에 하루를 너무 재미있게 놀았다.
몇 시간씩 줄을 서야 했다면 아이도 힘들고 부모도 지쳤을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 동안 다른 구역을 둘러보고,
쉬고,
먹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실 우리 가족의 여행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사카 여행에서는 가족 여권 4개를 한 번에 잃어버리는 아찔한 경험도 있었다.
→ 일본 오사카 여행 중 가족 여권 4개를 한 번에 잃어버렸다

아이들은 마리오 루이지 옷을 입고 하루 종일 신나 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부모는 돈이 아깝지 않다.
몇 만 원짜리 기념품보다
아이 기억 속에 오래 남을 하루를 선물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눈을 깜박이는 미니언을 발견했을 때는 눈부터 만져보고 있었다.
직원도 웃고 우리도 웃었다.
이런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여행의 진짜 재미인 것 같다.
그리고 나도 하나는 꼭 타고 싶었다.
유니버설의 대표 롤러코스터인 플라잉 다이너소어.
평소 같으면 대기시간 때문에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 패스 제도를 활용해 이용 시간을 등록하고 결국 탑승에 성공했다.

(들어가면 락커종이를 주는데 가진 모든 물건을 넣고 타야한다 거꾸로 매달려서 가기에..)
정말 익사이팅 했고,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아마 이날 가장 신난 사람은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먹는 걱정도 조금 있었다.
해외에 가면 입맛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집 아이들은 항상 한국에서보다 뭐든 잘 먹었다.
피자도 잘 먹고,
빵도 잘 먹고,
카레나 우동,
편의점 음식도 잘 먹었다.
생각해보면 부모에게 가장 큰 효도 중 하나는 여행 가서 밥 잘 먹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나오면서 문득 생각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발달장애 진단을 받고 앞날이 막막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까지 와서 놀이공원을 돌아다니고 있다.
물론 여전히 어려움은 있다.
갑자기 달려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부모를 긴장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아이도,
부모도.
이번 오사카 여행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시간이었다.
발달장애가 여행을 막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더 준비하고,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함께 걸어가야 할 뿐이다.
그렇게 이번에도 우리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오늘도 한 걸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