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아직도 엄마, 아빠를 말하지 못한다

핵심 요약

  • 발달장애가 있는 10살 첫째 아이는 아직 “엄마”, “아빠”라는 말을 또렷하게 하지 못한다.
  • 하지만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던 아이가 지금은 한라산 1500m 구간을 아빠와 함께 걷고, 들려준 단어를 한글로 받아 적을 수 있게 됐다.
  • 7~8년에 걸친 언어치료·감각통합치료와 다양한 경험(여행, 등산, 승마 등)이 그 변화를 만들었다.
  • 무발화 아동의 의사소통 능력은 개입과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국내 연구 사례와, 11살에 처음 말을 하고 18살에 글을 깨쳤지만 케임브리지 대학 최연소 흑인 교수가 된 제이슨 아데이(Jason Arday) 교수의 이야기를 함께 담았다.

얼마 전 제주도 여행에서 아이와 둘이 산을 올랐다. (둘째 아이와 아내는 해발 1200m까지에서 포기하고 내려간 건 비밀이다.)

산행 중 만난 해발 1200m 표지석 사진

1100고지에서 출발해 해발 1500m가 넘는 곳까지 걸어 올라갔다. 산을 내려오며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던 아이. 눈도 잘 마주치지 않던 아이. 엄마, 아빠라는 말조차 하지 못하던 아이. 그런 아이가 어느새 아빠와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우리 아이는 또래 아이들처럼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분명히 달라졌다. 그리고 그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매일 봐서는 보이지 않던 변화가 몇 년이라는 시간이 쌓이고 나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던 아이

우리 아이는 발달장애가 있다. 어릴 때는 이름을 불러도 잘 쳐다보지 않았다. 눈 맞춤도 어려웠다. 말도 거의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사실상 무발화에 가까운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특수학교 이야기도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상담을 받으면서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우리 아이 상태로는 특수학교 입학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특수학교에는 우리 아이보다 훨씬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한 중증 아이들이 많다고 했다.

결국 여러 고민 끝에 우리는 일반학교 도움반을 선택하게 되었다. 솔직히 지금도 정답은 모르겠다. 도움반도 완벽하지 않다. 교사 인력은 부족하고, 지원도 충분하지 않다. 부모 입장에서는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그 선택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는 분명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특수학교와 일반학교 도움반 중 어느 쪽이 정답인지는 아이의 상태와 지역 여건에 따라 다르며, 우리 가족의 경우 도움반을 선택한 것이 성장의 발판이 됐다.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달라진 것들

처음에는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았다.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공을 주고받는 놀이도 어려웠다. 자전거는 상상도 못 했다. 줄넘기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말은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 날은 이름을 부르면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공을 다시 던져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화단에 물을 주고 있는 아이의 뒷모습 사진 (소근육·일상 활동을 스스로 해내는 모습)

말은 여전히 쉽지 않다. 지금도 엄마, 아빠라는 말조차 또렷하게 하지 못한다. 발음도 정확하지 않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직 어렵다.

그런데 어느 순간 놀라운 일이 생겼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단어를 글자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하마”, “기차”, “나비” 같은 단어를 들려주면 직접 한글로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엄마, 아빠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글자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것 아닌 일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큰 변화였다.

결론적으로, 말이 트이는 순서는 아이마다 다르며 우리 아이의 경우 ‘말하기’보다 ‘쓰기’가 먼저 열린 통로였다.


7~8년의 치료, 그리고 가장 고생한 사람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는 두 살 무렵부터 치료를 시작했다. 언어치료, 감각통합치료, 인지치료, 각종 발달센터,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교육과 학습. 정확히 세어보니 어느새 7~8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가장 고생한 사람은 아이 엄마였다. 센터를 알아보고, 예약하고, 데려가고, 숙제를 시키고, 집에서 반복 연습을 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어왔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최대한 함께하려고 노력했지만, 솔직히 가장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보낸 사람은 엄마였다.

지금 우리 아이가 여기까지 온 것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아이의 노력, 엄마의 노력, 그리고 가족의 노력이 조금씩 쌓인 결과다.

결론적으로, 아이의 언어 발달은 특정 치료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입과 가족의 꾸준한 반복이 함께 쌓여 만들어진 결과였다.


무발화 아이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연구들

이 지점에서 부모로서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우리 아이 같은 경우, 실제로 연구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할까?”

국내 특수교육 분야에서는 무발화 자폐 스펙트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언어 중재 연구들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사례 연구에서는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자폐 스펙트럼 아동들에게 ‘강화된 환경중심 언어 교수’라는 중재 방법을 적용한 결과, 요구하기와 반응하기 같은 의사소통 기능이 향상되었고 중재가 끝난 뒤에도 그 효과가 일정 기간 유지되었다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연구들에서도 자폐 스펙트럼 아동의 언어·의사소통 능력은 아동마다 발달 속도와 경로가 다르며, 꾸준한 개입과 반복을 통해 점진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이런 연구 결과가 모든 아이에게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자폐 스펙트럼은 개개인의 특성 차이가 매우 큰 만큼, 언어 발달의 시기와 방식도 아이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우리 부부도 어떤 하나의 방법이 정답이라고 믿기보다, 아이의 상태를 봐가며 여러 치료와 경험을 병행해왔다.

결론적으로, 무발화나 언어 지연이 있는 아이라도 개입과 시간에 따라 의사소통 능력이 조금씩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부분이다.


11살에 처음 말하고, 18살에 글을 배운 케임브리지 교수 이야기

이 이야기를 하면서 꼭 소개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제이슨 아데이(Jason Arday) 교수다.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를 접하고 정말 큰 위로와 희망을 받았기에, 조금 자세히 소개해보려 한다.

아데이 교수는 세 살 때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전반적 발달지연 진단을 받았다. 그 영향으로 그는 11살이 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했고, 18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 그를 진단했던 교육심리학자와 치료사들은 그가 성인이 되어서도 자립 생활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헌신적인 지지와 몇몇 은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익혀갔다. 음악과 노래 가사를 통해 언어 감각을 키우고, 반복적인 활동을 통해 학습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냈다고 전해진다. 대학에서 체육교육을 전공한 뒤 학교 교사로 일했고, 이후 대학원 과정을 거쳐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2023년,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역사상 최연소 흑인 교수로 임명되며 교육사회학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학교의 많은 선생님들은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고 회고하면서도, 자신의 어려움을 결핍이 아니라 다르게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 받아들이도록 도와준 어머니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부모로서 가장 두려운 순간에도 붙잡을 수 있는 희망 하나를 얻었다. 물론 모든 아이가 아데이 교수처럼 극적인 결과를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언어 발달의 속도와 방향은 아이마다 다르고, 어떤 아이에게 효과가 있던 방법이 다른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 말이 트이지 않았다고 해서 그 아이의 가능성까지 정해진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만큼은, 이 이야기가 분명히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발화 시기가 늦다는 것이 그 사람의 미래 가능성을 미리 결정짓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아데이 교수의 삶이 잘 보여준다.


낯선 곳으로, 계속 함께 나갔던 이유

우리는 치료만 한 것도 아니다. 가능한 한 많은 경험을 하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국내 여행도 다녔고, 해외여행도 다녔다. 산도 갔다. 바다도 갔다. 말도 탔다. 사람들이 많은 곳도 갔다. 심지어 활화산 분화구도 보여주었다.

해외 여행 중 바다를 바라보는 뒷모습 사진 (유모차와 함께한 가족 여행)

대형 로봇 조형물 앞에서 찍은 가족사진 (해외 여행 중)

승마 체험 사진

활화산 분화구를 함께 바라보는 사진

물론 쉽지는 않았다. 혹시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갑자기 뛰어가지는 않을까 늘 긴장해야 했다. 실제로 세부 막탄공항에서 잃어버린 적도 있고, 일본 오사카 도톤보리 광장에서 잃어버려서 2시간 만에 찾은 적도 있다. 그 외 국내에서 잃어버린 경우는 셀 수 없었다.

그래도 집 안에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제주도 여행에서는 한라산 1100고지에서 출발해 해발 1500m가 넘는 곳까지 함께 걸어 올라갔다. 예전의 아이를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름을 불러도 돌아보지 않던 아이. 눈 맞춤도 어려웠던 아이. 공 하나 주고받는 것도 쉽지 않았던 아이가 어느새 아빠와 함께 산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낯선 환경에서의 반복된 경험은 치료실 밖에서도 아이의 세상을 조금씩 넓혀주는 또 하나의 배움이 됐다.


손톱이 자라는 것처럼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매일 아이를 보면 변화가 잘 보이지 않는다. 오늘도 비슷하고, 내일도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몇 년 전 사진을 보면 깜짝 놀란다. 정말 많이 달라져 있다.

마치 손톱이 자라는 것과 같다. 매일 보면 안 자라는 것 같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보면 어느새 훌쩍 자라 있다. 우리 아이도 그랬다. 매일은 보이지 않던 변화가, 수년이라는 시간을 지나 돌아보니 분명히 쌓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믿는다. 오늘 보이지 않는 변화가 언젠가는 쌓인다는 것을. 우리 아이도, 우리 가족도, 오늘도 한 걸음씩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무발화인 아이도 나중에 말이 트일 수 있나요? A. 아이마다 언어 발달의 속도와 경로가 다르기 때문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여러 국내 연구와 실제 사례들을 보면 꾸준한 언어 중재와 개입을 통해 의사소통 능력이 점진적으로 향상되는 경우가 보고되고 있다. 다만 정확한 예후는 전문의나 언어치료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Q2. 특수학교와 일반학교 도움반,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하나요? A. 아이의 현재 상태, 필요한 지원의 정도, 거주 지역의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 가족은 상담 과정에서 아이의 상태에 맞는 선택지를 함께 검토했고, 그 결과 일반학교 도움반을 선택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 아이의 사례일 뿐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답은 아니다.

Q3. 제이슨 아데이 교수처럼 늦게 말을 배운 사례가 흔한가요? A. 아데이 교수처럼 극적으로 알려진 사례는 흔하지 않지만, 발화 시기가 또래보다 늦더라도 이후 의사소통과 학습 능력이 발전하는 사례는 국내외 여러 기록과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늦다”는 것 자체가 미래를 결정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며 겪은 다른 이야기들은 발달장애 육아 카테고리에서 계속 이어가고 있다. AI를 활용해 일상과 업무를 정리하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AI 하나로 내 삶이 이렇게 바뀔 줄이야 글도 함께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오늘도 한걸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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