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의 신장암 진단, 그리고 3년의 병원 생활

2022년경 장모님은 신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그때만 해도 앞으로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족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당시 우리 부부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첫째는 발달장애가 있었고, 둘째도 아직 어린 나이였다.

아내는 육아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 진료와 치료 과정은 자연스럽게 내가 함께하게 되었다.

그 후 약 3년 동안 연세세브란스병원을 오가며 진료를 받았다.

항암치료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일반적인 항암치료는 검색해보니 유지정도 되는 수준인거 같았고, 새로운 치료제들은 비용이 너무 높아 현실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웠다.

그 과정에서 담당 의료진은 임상시험 참여를 제안했다.

다행히 참여 조건이 맞았고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희망이 보였다.

검사 결과도 나쁘지 않았고 가족들 모두 조심스럽게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약효는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내성이 생겨 약을 변경해야 했다.

그렇게 버텨오던 중 암은 폐로 전이되었다.

그때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 장모님이 깜박깜박 하시고 말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나이와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치매 증상으로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치매가 아니었다.

암이 이미 뇌로 전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다.

이후 상황은 너무 빠르게 악화되었다.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장모님은 점점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말씀도 거의 못하게 되었고, 결국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장모님이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오신 분이었다는 점이다.

장모님은 암 진단을 받기 전부터 치매와 파킨슨병을 앓고 계신 장인어른을 돌보고 계셨다.

직접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해 장인어른을 보살피셨고, 생계를 위해 아파트 청소 일도 병행하셨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마지막 중환자실에서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의식은 거의 없었고 눈도 뜨지 못하셨지만, 마지막 순간 장모님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의 의미를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장면은 가족 모두의 기억 속에 깊이 남아 있다.

이 글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장례식을 치루고 성년후견이나 상속 이야기를 하기 위한 시작점이다.

장모님의 투병과 이별이 있었기에 이후의 상속 문제와 성년후견 절차도 시작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장모님을 떠나보낸 뒤 가족이 처음 마주하게 된 현실에 대해 기록해 보려고 한다.

오늘도 한걸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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